종이 봉지 공주 / 로버트 문치 글 / 마이클 마첸코 그림 / 김태희 옮김 / 비룡소 / 1998.11.26.
요즘 공주에 빠져 있는 딸에게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어주었어요.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와는 표지부터가 다른 분위기라 만 3살 딸은 읽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나 이 책 안좋아하는데..." 딸이 말했지요.
"종이 봉지 공주 책도 한 번 읽어보자. 왜 종이 봉지 공주가 됐을까?"
공주 이름은 엘리자베스에요. 아름다운 모습으로 첫 장에 등장한 후로, 줄 곧 형편없는 모습이에요. 로널드 왕자와 결혼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말이지요. 무서운 용이 나타나, 공주의 성을 부수고, 공주의 옷을 몽땅 태워 버렸어요. 왕자도 잡아갔지요.
우리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낙담하지 않아요. 주저 앉아 신세한탄을 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아요. 용을 뒤쫓아가 왕자를 구해 오기로 다짐해요. 옷이 모두 타서 입을 것이 없는 공주는 종이 봉지를 주위 입고 용을 찾아 가요.
용을 찾아간 공주는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려요. 이미 성 한 채를 먹은 용은 내일 다시 오라고 하지만, 공주는 물러서지 않아요. 용을 칭찬하며 용이 자신의 불을 계속해서 내뿜도록 유도해요. 용에게 불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용을 구슬려 불을 내뿜게 하고, 용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세상을 한 바퀴 돌도록 유도하지요. 힘이 아닌, 오로지 지혜로운 머리로 말이지요.
결국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용을 뒤로하고 왕자를 구했어요. 그런데, 왕자는 그런 엘리자베스를 보자마자, 엘리자베스의 외모 상태를 비난해요. 진짜 공주처럼 입고 다시 오라고 말해요.
우리의 용감한 공주는 말했어요.
"그래 로널드,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지 않았지요.
이런 스토리의 공주 책은 처음이에요. 늘 왕자에게 선택 받는 공주들이 나오는 책만 본 것 같은데 말이지요. 주체적이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는 멋진 공주가 등장하는 <종이 봉지 공주> 책이 저는 마음에 드는데,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그림책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보는 <뽀로로>, <로보카 폴리>, <슈퍼윙스>를 보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나약하게 나와요. 색상도 하나 같이 핑크로 통일 시켜, 여성의 캐릭터가 지극히 제한적이지요.
그림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런 <종이 봉지 공주> 책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 감사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여성의 이미지를 특정하여 고착화 시키지 않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이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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