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말고 뭐라도 해볼까?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 김승진 옮김 / 생각의 힘 / 2020.05.11.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회적 현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에요. 트럼프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들이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가 믿고 있는 거대한 진리가 사실은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지요. 실험 기반의 접근법으로 빈곤 퇴치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한 경제학자 부부의 책이랍니다.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존엄과 유대를 향한 인간의 깊은 열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물이나 곁가지가 아니라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더 나은 길로 여겨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는 경제의 우선순위와 사회가 구성원들을 (특히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돌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p.29

 

존엄과 유대를 향한 인간의 깊은 열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하는 경제학자이기에 빈곤 퇴치 연구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각 나라의 경제 발전이나 개인의 부에 축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부분 즉, 존엄성에 말하고자 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포장된 책을 뜯어보기 전 책이 두 권이 아닌가 했어요. 생각보다 두께가 두껍더라고요. 책이 담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논거가 꽤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경제학의 핵심 주제 이주, 무역, 성장, 불평등, 환경 등을 둘러싼 공공 담론에 대해 분할하여 소상하게 다루고 있지요. 또한 부유한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이 가난한 나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요. 폭증하는 불평등이 현 미국 사회에 발생하는 시위로 번진 것이겠지요. 저자가 이 책을 쓴 시기는 아니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생각이 들어요. 

 

이주에 대해 저자는 연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은 많은 사람이 이주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실험을 통해서도 나타났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지속적으로 머물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주를 하여 더 큰돈을 벌 수 있고 삶의 여건이 더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미미한 인원만이 이주를 감행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이런 비이동성이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 위험에 대한 확대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해요.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없나 하는 상황도 크게 차지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는 것이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느냐 혹은 일자리를 박탈하느냐 하는 우리들이 가진 보편적 편견에 저자는 반기를 들고 있지요. 비숙련 노동자 유입은 현지인들의 승진으로 연결되고, 비교적 저렴한 임금으로 육아를 맡길 수 있는 인력으로 여성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미국을 비롯해 여러 선진국들이 이민 정책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과연 그런 정책이 그 나라의 경제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제기하지요. 

 

리카도는 포르투갈이 와인과 의류 둘 다에서 영국보다 절대 우위에 있더라도 자유로운 교역이 이뤄지면 각자 비교 우위가 있는 분야(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더 높은 분야)에 특화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포르투갈은 와인에, 영국은 의류에 특화를 한 뒤 자유롭게 교역을 하면,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생산 효율성이 더 높은 제품을 만들게 되므로 자원을 생산성이 낮은 분야에 낭비하지 않게 되어서 전보다 GNP, 즉 국민들이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의 총량이 양국 모두에서 증가하게 될 것이었다.

여기에서 리카도의 핵심적인 통찰은 모든 시장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는 무역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을 하나씩 따로 보면 중국이 다 경쟁력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이 모든 시장에서 동시에 승리할 수는 없다. p.107

 

각국 지도자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이익만에 집중하여 과도한 관세로 무역을 컨트롤하고 있어요. 생산 효율성과 GNP 성장률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겠지요. 그러나, 인도에서 1991년도에 무역을 개방하며 경제 성장을 이룩했듯이 진정 자국의 미래와 이익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도자들의 고민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 들어요. 

 

관세가 아니라면, 무엇이어야 하는가? 비이동성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동성을 촉진하라.

 

저자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어요.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 가는 것을 도움으로써 패자 수를 줄이는 것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TAA(무역조정지원) 프로그램인데, 이것이 규모도 작고 예산이 충분하지가 않다고 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을 받은 노동자들이 10년 동안 누적적으로 보면 5만 달러를 더 벌었다고 하는데 말이죠. 노동자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투자 TAA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들의 이동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른 인종, 종교, 민족, 심지어는 다른 성별에 대해서까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적대감은 오늘날 전 세계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미국부터 헝가리까지, 이탈리아부터 인도까지 세계 곳곳에서, 정책 공약이라고는 인종주의와 편견밖에 없는 듯한 사람들이 정치판의 주요 인물이자 선거와 정책에 막중한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세력으로 점점 더 부상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는 어떤 살마이 자신의 정체성을 백인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얼마나 강한지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여부를 매우 잘 예측해 주는 변수였다. 경제적 불안감 같은 변수보다도 예측력이 컸다. p.177

 

2016년 대선이래 지배적인 이슈로 부상한 것이 흑인에 대한 불신이라기 보다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인 것 같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분노를 훨씬 넘어서 일자리만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 백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범죄자이고 강간범으로 이야기된다고 해요. 이전부터 이런 정서가 있었겠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죠. 

 

책은 지속적으로 세계 여러나라들에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경제 성장, 기후변화, 인공지능, 국가의 역할 등등. 한 번 쓰윽 읽고  이 책을 이해했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방대한 사안을 다루기도 하지만, 곱씹고 찬찬히 읽으며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들을 마주하고 직시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좋은 경제학만으로 우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경제학이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치명적인 실수를 반드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무지, 직관, 이데올로기, 관성이 결합해서, 그럴듯해 보이고 많은 것을 약속해 주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배신하게 될 답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수없이 말해 주듯이, 한 시대를 장악하는 사상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이민자가 들어오게 국경을 계속 열어 주면 우리 사회는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근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쁜 사상의 영향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의자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신중하게 살피고,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고,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복잡성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중함이 없다면, 다층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담론은 단순한 슬로건과 이미지로 환원되어 버리고,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한 정책은 돌팔이의 해법에 밀려나 버릴 것이다. p.555

 

경제학도로 현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확실히 깊이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담아내기에 나의 그릇이 너무 작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고요. 감히, 언급하기도 어려운 주제들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힘든 시대에 그저 힘들다고 투덜 거리는 존재로 살아가지 않도록, 고민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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