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말고 뭐라도 해볼까?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는 없어! / 콜린 피에레 글 / 로이크 프루아사르 그림 / 박새한 옮김

 

 

아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먹지 않는 걸 말하는 거겠지 하고 봤는데, 아니다. 제목은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는 없어!"이다. 아이를 먹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8살 큰 아이는 책의 제목을 보고 흥미로웠는지 그림들을 훑어본 뒤였다. 대충 그려논 듯 몽실몽실 펑키 스타일 그림에서 아이가 카트에 앉아 있는데, 함께 장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괴물들은 평화롭게 살면서, 아이를 먹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끔직한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그림 속은 세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가 밥과 고기를 먹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자기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며 그림 장면을 한 참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 아이로 만든 스크림이란 것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어느 날, 괴물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로 만든 그라탱이 평소보다 덜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게지요.

아이를 먹은 괴물들이 점점 아프다. 갓 나온 신선한 아기나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아이만 사갔지만 계속 병들어갔다. 우리 현대인들의 탐욕적인 식습관을 그림책은 다채로운 색감과 귀여운 그림으로 꼬집고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내게 남자가 뭐하고 있냐고 묻는다. 신선한 아이를 고르기 위해 냄새를 맡고 있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난 순간적으로 우리가 즐겨 먹는 닭이나 돼지고기 소고기가 동물의 형태를 유지한채 부피만 작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엄마와 책을 보고 있는 딸아이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 없게 된 괴물들은 눈에 띄게 말랐습니다. 

 

아이를 먹지 못하는 괴물들은 어떻게 변모하게 될까? 새로운 식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의식적으로 야채를 많이 먹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여러 야채가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되어 있고 난 그것을 씻쳐서 그냥 드레싱을 얹어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꺼내어 차려지지 않는다. 익숙하게 먹던 것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보며 아이들의 모든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자유를 빼앗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일까, 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을 만나면, 맛있는 반응을 포착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괴물들이 아이를 먹는 잔인한 모습을 유쾌하게 바라보며 공포를 즐깁니다. 괴물들이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 없게 되어 안전부절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하지요. 특히 어린 독자들은 우리가 모두 괴물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립니다. 저는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유럽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아이 먹는 괴물에게 지지 않고 맞서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래도, 이 이야기의 승자는 아이들이니까요." 

 

콜린 피에레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이 이야기가 유럽 전통 설화에 아이 먹는 괴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목만 봤을 때, 다소 공포스럽지만 그림도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멈추어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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