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말고 뭐라도 해볼까?

전역을 하면서...

2020. 3. 1. 14:48

망각하고 있었지만, 저는 해군 여군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3월부터 민간인이 되었지만 말이죠. 실질적으로 군생활은 3년밖에 안 했어요. 소속 부대로 발령받은 그 달에 상견례하고, 8개월 뒤 결혼을 했어요. 군 입대 시기가 늦은 것도 있었지만, 당시 장거리 연애 중이던 남편이 빨리 결혼하길 원했어요. 놀랍게도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아기가 들어섰고, 제 군 생활은 그때부터 꼬였어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항공부대에서 근무했는데, 뱃속에 아기가 있으므로 사무실 근무를 해야 했어요. 2선으로 빠지면 실무를 배울 수가 없어요.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나, 출산을 위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2년여 시간을 아이를 키우는데 몰두하다가 다시 일터로 갔어요.

 

두 돌 지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12시간 맡기며 근무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삶은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예상치 못한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이죠. 복귀하고 3개월이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업무 자체가 태아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라, 숨길 수도 없었지요. 사무실 근무였다면 숨겼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결국, 또 2선으로 빠져 9개월 근무 후 육아휴직에 들어갔어요. 근평은 좋을 수 없었고, 스스로 군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단념하게 되더군요. 육아휴직에 앞서 전역 지원서를 냈답니다. 제복을 입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거쳤으니 군생활을 유지하려 했지만, 결혼생활과 군생활이 맞물리며 제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둘째 임신 사실은 기쁨보단 우울함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상위에 보고하는 것도 엄두가 안 났고,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끝이 없었기 때문이죠. 딸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낳고 나서 줄 곧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엔 울고 했었던 같아요. 오빠와 다정하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 고민하고 힘겨워했던 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출산 앞두고 전역 결심 후,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저의 근무지로 인해 서울서 지방으로 회사를 옮겼던 남편이 지방에서 서울 근무지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거죠. 망설이는 남편에게 전 적극적으로 이직을 권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윗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남은 군생활 3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것도 없이 육아휴직으로 돌렸지요. 3년 좀 덜 되는 기간의 군생활과 큰 아이 2년 둘 째 3년 육아휴직을 거쳐 연차로는 8년이란 시간을 군인이란 신분으로 살았어요. 모든 군인들이 그렇겠지만, 배를 타는 해군 여군들 같은 경우 결혼생활과 병행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에요.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많이 생겨, 예전에 보다 좋아지긴 했겠지만 말이죠.  

 

저는 육상근무가 가능한 항공쪽이라 배 타는 여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하겠지만, 당직과 비상근무는 워킹맘으로 지내는 동안 정말 힘들고 고달픈 시간이었어요. 가까이 부모님 손길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어린이집에 12시간씩 아이를 맡기는 상황이었으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었죠. 

 

시스템이 많이 좋아지고 있고 또 지속적으로 개선되겠지만, 남군 입장에서는 저처럼 아이를 둘 낳는 여군이 좋게 보일 리 없어요. 임신 중엔 임신이라 열외를 받고, 육아 휴직 기간에도 일정 기간은 TO를 잡아먹고 있으니 말이죠. 

 

그저 존재만으로도 민폐인 것 같아, 조용히 있다 전역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전역 하는 날 부대 복귀해 신고를 하고 선후배들한테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지만, 코로나 사태로 지역 간 움직임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갈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냥 조용히 전역날이 지나가길 바랬는데, 선배 한 분의 연락을 받았어요. 선후배들이 함께 가입해 있는 곳에 인사 글이라도 남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죠. 물론, 선배는 제게 밀린 회비와 전역축하금 전달과 관련해 연락한 것이죠. 저는 인사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어요. 

 

인사글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비난을 받을 거란 생각이 너무 컸어요. 뭐, 제가 남긴 글에 비난의 댓글이 직접 달리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저의 존재를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저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아요. 여군을 처음 받기 시작한 곳이라 "여군도 할 수 있다"란 본보기를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알게 모르게 받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제 삶을 통틀어 가장 심했던 시기가 군생활때 이기도 하고요. 발령을 받고 2달 만에 이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란 회의감이 많이 들었죠. 결혼 출산과 함께 나의 포부, 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의지와 다르게 물거품이 되었지만요. 

 

한편으론 속이 후련해요. 민간인도 군인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라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 어려웠으니 말이죠. 해외에 나가려면 부대에 신고를 해야 해서 신혼여행 후, 해외에 나갈 엄두도 못 냈던 것 같아요. 이제 제게 주어진 자유를 맘껏 누리며, 소신껏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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